안데르스 M. 라이네스: 이미지가 바뀐 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안데르스 M. 라이네스는 파킨슨병을 그 내부에서 기록해왔다. 처음에 그는 이 병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바꾸고자 했다. 10년 후, 그는 같은 사람들에게 돌아갔고, 시간과 정체성에 관한 더 어두운 이야기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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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스 M. 라이네스: 이미지가 바뀐 뒤

오슬로의 화창한 봄날, 안데르스 M. 라이네스는 직장 생활의 많은 시간을 보낸 NRK의 복도를 걷는다. 바깥의 빛은 날카로우면서도 넉넉하다. 우리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스튜디오 안에서 라이네스는 커튼을 친다. 방이 어두워진다.

"이게 더 낫습니다." 그가 말한다.

그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빛, 열기, 긴 대화, 너무 오래 서 있는 것, 너무 오래 누군가를 응대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이제는 관리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그의 몸에는 병의 흔적이 눈에 띄게 새겨져 있다. 의지와 무관한 움직임, 멈칫거림, 말과 표정이 때때로 의도보다 반박자 늦게 따라오는 듯한 모습. 그럼에도 그는 여기 있다. 여전히 건물 안을 오가며 동료들과 인사하고, 프로젝트와 이미지와 마감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건 큰 의미가 있어요." 그가 말한다. "일상이 정상적으로 유지되니까요."

그러나 이제 정상이라는 것은 간격을 두고 찾아온다. 그는 더 이상 원하는 만큼 일하지 못한다. 급여의 일부는 국가 상병수당으로 충당된다. 자리를 비우고 조용한 방을 찾아, 몸이 다시 제 손에 잡힐 때까지 사무실의 분주함에서 잠시 사라져야 하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파킨슨은 세상을 좁게 만듭니다." 그가 말한다. "모든 것이 축소돼요."

그는 극적인 어조 없이 그 말을 한다. 그러나 인터뷰가 끝났을 때, 피로가 그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때 전화가 울린다. 아내 안니카다. 그가 미소 짓는다. 두 사람은 잠시 저녁식사 이야기를 나눈다. 평범한 무언가. 좋은 무언가. 계획할 한 끼, 내려앉을 하루.

라이네스가 파킨슨병을 둘러싸고 공개적으로 해온 모든 작업, 전시와 영화, 인터뷰, 학회, 병을 가시화하기 위해 보낸 수년의 시간 이면에는 모든 것을 지탱하는 사적인 구조물이 있다. 가족, 일상, 일, 시스템, 사랑. 한 사람이 진단명 하나로만 환원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들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라이네스의 작업은 세계파킨슨학회(World Parkinson Congress)와 더 넓은 국제 파킨슨 커뮤니티의 일부가 되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사진들, 즉 '병은 이러해야 한다'는 통념과 닮기를 거부한 파킨슨 환자들의 초상 사진은 지금도 국제적으로 순회 전시된다. 그러나 라이네스는 '획기적 돌파구'라는 언어를 경계하게 되었다.

"저는 사실 그런 걸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가 말한다. "저에게는 다른 것이죠. 사람들, 그리고 무언가의 일부라는 느낌."

아무도 자청해서 들어가지 않을 집단, 그러나 그 안에서 힘의 원천을 발견할 수도 있는 집단. 그 소속감을 그는 처음 카메라를 들고 파킨슨을 기록하기 시작했을 때와는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

멋진 사람들

2010년 진단을 받았을 때 라이네스는 47세였고 NRK에서 기자이자 사진가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오랜 세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왔고, 그중 상당수가 건강과 질병에 관한 것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는 일에는 익숙했지만, 자신이 노출되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저는 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가 말한다. "언제나 다른 사람에 관한 일이었죠."

진단 후 그를 강타한 것은 두려움만이 아니라 어떤 어긋남이었다. 파킨슨병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는 좁고 반복적이었다. 손을 떠는 노인, 굽은 자세, 이미 몸에 새겨진 쇠퇴. 라이네스는 그 이미지 속에서 자신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만나기 시작한 사람들도 거기에 없었다.

"그들은 멋있었어요." 그가 말한다. "태도가 있었죠."

이것은 부정이 아니었다. 파킨슨이 진행성이며 침습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병을 가진 사람들이 증상만으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구분이 그의 사진 프로젝트 'This is Parkinson's'의 토대가 되었다.

그는 환자 네트워크와 공개 모집을 통해 참가자들을 찾았다. 그는 50세 미만의 사람들을 원했다. 조기 발병 파킨슨병은 여전히 대중의 상상 속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환자 공동체 내부에서조차 이제 막 자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참이었다.

그는 응답한 거의 모든 사람을 촬영했다.

그 결과물은 전통적 의미의 캠페인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정확한 어떤 것, 즉 시각적 기록의 교정이었다. 거기에는 인생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련되고, 지쳐 있고, 허영심이 있고, 유쾌하고, 두려워하고, 직업적으로 활동적이고, 사회적으로 복잡하고, 성적으로도 살아 있는 사람들. 상징이 아니다. 영감을 주는 사례도 아니다. 사람들이다.

이 이미지들은 멀리 퍼져나갔다. 노르웨이 안팎에서 전시되었다. 그리고 디지털 플랫폼, 그리고 '대신 말해지는 것'을 더는 참지 못하게 된 정서가 가능케 한, 더 광범위한 환자 참여 운동의 일부가 되었다.

"제가 시작했을 때 인터넷과 동영상 플랫폼 덕분에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이네스가 말한다. "환자들이 나서기 시작하던 때였죠."

거의 우연히, 그 자신도 그 변화의 일부가 되었다. 카메라와 진단명, 그리고 기존 이미지에 대한 짜증을 충분히 품은 한 남자가, 결국 무언가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 프로젝트가 통한 이유는 결코 너무 강하게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보여줄 뿐이었다.

더 어두운 장

그러나 이미지는 늙는다. 사람도 늙는다. 병은 진행된다.

라이네스는 자신이 촬영했던 많은 이들과 연락을 이어갔다. 그동안 그 자신의 파킨슨은 일상의 구조 안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약은 타이밍의 문제가 되었다. 에너지는 계산의 대상이 되었다. 일은 적응을 요구했다. 한때 새로웠던 진단명은 어느덧 날씨처럼 익숙해졌다.

그러다 그는 그 프로젝트로 돌아갔다. 10년이 흐른 뒤, 이야기는 달라져 있었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사람들이 자신의 병보다 더 큰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말한다. "두 번째는 그 병이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에 관한 것이었어요."

두 번째 장은 더 어둡다. 라이네스가 그것을 원해서가 아니라, 시간이 그렇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일부 참가자들은 여전히 비교적 잘 지내고 있었다.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몇 명은 뇌심부자극술(DBS)을 포함한 고난도 치료를 받았다. 한 사람은 수술 후 놀라운 거리를 자전거로 달렸다. 또 다른 사람은 표준 권고의 상당 부분을 무시하면서도 놀라울 만큼 잘 지내는 듯했다. 강박적으로 운동하지 않고, 환자 공동체에 깊이 몰입하지도 않으며, 파킨슨을 자기 삶의 중심 원리로 삼지 않는 방식이었다.

다른 이들은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누군가는 세상을 떠났다. 한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단순화하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라이네스가 말한다. "이 병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사람마다 얼마나 다른지가 보이게 되죠."

그 차이는 그가 파킨슨을 이해하는 방식의 핵심이 되었다.

"이건 하나의 병이 아닙니다." 그가 말한다. "여러 개의 병이에요."

This is Parkinson's
This is Parkinson'sAnders M. Leines

그는 말 그대로의 의미로 그렇게 말한다. 파킨슨은 증상, 진행 속도, 인지, 치료 반응, 부작용, 가족에 미치는 영향, 경제적 영향이 모두 다르다. 나라마다, 계급마다, 성격마다, 운에 따라 다르다.

연구자들에게 그 이질성은 과학적 도전이다. 환자들에게는 실존적 문제다. 이 병을 가로지르는 단 하나의 지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파킨슨을 알아가야 합니다." 라이네스가 말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는 있지만, 누군가를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어요."

그 생각은 두렵지만, 제한된 의미에서 자비롭기도 하다.

"모두가 다르다면," 그가 말한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어쩌면 내 경우엔 그렇게 나쁘게 흘러가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천천히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라이네스는 특정한 종류의 희망을 경계하게 되었다. 그는 연구와 치료, 그리고 과학의 느린 작업을 믿는다. 그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를 괴롭히는 것은 '바로 코앞에 치료법이 있다'는 반복되는 약속이다.

"제가 진단받았을 때 사람들은 늘 10년을 이야기했어요." 그가 말한다. "10년 안에 이것 또는 저것이 가능해질 거라고요. 이제는 예전만큼 그런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 약속은 예정대로 도착하지 않았다. 진행성 질환을 안고 사는 사람에게 그것은 중요한 문제다. 과학의 시간과 몸의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흐른다. 연구의 시간으로는 '가까운' 치료법이라 해도,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너무 늦게 도착할 수 있다.

"상황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라이네스가 말한다. "하지만 천천히요."

두 번째 프로젝트가 그에게 중요한 이유의 일부가 여기에 있다. 이 프로젝트는 절망과 마케팅 양쪽 모두에 저항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자세히 보라. 더 오래 보라. 시간이 무엇을 하는지 보라.

더 명확한 경로

노르웨이에서는 자신의 병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 비교적 안전하다고 라이네스는 말한다. 직장 내 보호 장치가 있다. 수당, 재활 서비스, 신경과 전문의, 환자 단체도 있다.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지만, 존재한다.

"노르웨이는 아프기에 좋은 나라입니다." 그가 말한다.

그가 NRK에 계속 머무를 수 있다는 사실도 그 이야기의 일부다. 직무는 조정되었다. 한때 그가 할 수 있던 일과 지금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간극을 공적 지원이 일부 메워준다. 그는 그것에 감사하면서도, 실패만을 부각하는 서사에는 조바심을 낸다.

그럼에도 그는 이 시스템에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다고 본다. 진단 이후의 더 명확한 경로, 노르웨이 의료체계의 다른 분야에서 활용되는 구조화된 암 진료 경로와 비슷한 그 무엇이다.

"사람들에겐 질문이 정말 많습니다." 그가 말한다.

새로 진단받은 환자는 처방약과 단편적인 정보, 그리고 막막한 미래를 안은 채 신경과 진료실을 나서기 쉽다. 라이네스는 좀 더 체계적인 무언가를 보고 싶어 한다. 혼란과 고립이 자리 잡기 전에 환자들을 일찍 돕는 방법 말이다.

국제적 인맥을 통해 그는 다른 곳에서 파킨슨과 함께 사는 삶이 얼마나 다른 모습일 수 있는지도 보았다. 어떤 나라들에서는 사람들이 일을 잃을까 봐 진단 사실을 숨긴다. 어떤 곳에서는 낙인이 여전히 깊다. 더 가난한 나라에서는 의료 자체에 접근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많은 곳에서 이를 숨길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죠." 그가 말한다.

그 경고는 틀렸다

여러 해 전, 누군가 그에게 파킨슨 학회에 참석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우울할 거라고 했다.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고, 눈에 보이는 쇠퇴가 너무 많다고. 그 경고는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아픈 사람들이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는 그중에서도 가장 활동적인 사람들이 있었다. 여전히 여행하고, 조직하고, 연구하고, 영화를 만들고, 기술을 시험하고, 방법을 비교하고, 하루를 버텨내기 위한 작은 노하우들을 공유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학회의 힘은 슬픔과 추진력의 결합에 있다고 라이네스는 말한다. 슬픈 환자 집단이지만, 패배한 집단은 아니다. 환자 참여가 단순한 구호 이상이 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학회에서 환자들은 단지 연구 대상이나 수혜자가 아니다. 그들은 병을 둘러싼 지식 경제의 참여자다.

그들은 어떤 임상시험으로도 온전히 포착할 수 없는 형태의 지식을 가져온다. 회의 도중 약효가 끊겼을 때의 느낌, 충동조절 부작용이 결혼생활에 미치는 영향, 피로가 말에 끼치는 영향, 낙인이 직장 생활에 끼치는 영향. 라이네스는 그러한 지식을 이미지로 옮기는 데 수년을 보냈다.

통제력을 잃는다는 것

63세인 그는 미래에 대해 과장 없이 말한다.

"앞으로 10년은 어떻게든 버틸 겁니다." 그가 말한다. "하지만 더 힘들어지겠죠."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단지 몸이 아니다.

"아마 정신에 일어나는 일이 가장 두렵습니다." 그가 말한다. "치매죠. 하지만 신체적 통제력을 잃는 것도 매우 힘든 일이에요."

그는 뇌심부자극술을 포함한 고난도 치료를 고려 중이지만 신중하다. 의료 시술을 충분히 많이 촬영해온 덕에, 시술이 마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그것은 절충과 불확실성, 그리고 위험의 문제다.

"잘못될 수 있다는 걸 알 만큼 많이 봤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약이 여전히 듣는다. 늘 듣는 것은 아니다. 균일하지도 않다. 그러나 충분하다.

어두워진 스튜디오에 앉아 사진, 낙인, 과학, 자전거를 타는 환자들, 학회, 죽음, 그리고 저녁식사에 대해 몇 시간씩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은.

약이 제대로 듣지 않을 때, 그는 스스로 '달팽이 모드'라 부르는 상태로 느려진다. 그는 물러난다. 잠시 숨는다.

이것 또한 파킨슨이다.

전체의 프레임

라이네스가 파킨슨과 함께한 삶을 상실의 이야기로 그리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병은 무언가를 앗아갔고, 지금도 계속 앗아가고 있다. 그러나 라이네스는 상실이 프레임 전체를 차지하도록 두지 않는다.

"파킨슨은 빼앗습니다." 그가 말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줄 수도 있어요."

보상은 아니다. 의미도 아니다. 그러나 공동체, 우정, 그리고 그렇지 않았다면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만남들이 있다.

"저는 역량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가 말한다.

이것은 장식용 낙관이 아니다. 냉정한 셈법이다.

"삶의 질은 모든 것을 합쳐놓은 것입니다." 그가 말한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제 삶은 여전히 좋아요."

그 문장 안에는 라이네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가치를 만드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명랑해서가 아니라, 현실과의 접촉을 견뎌낸 문장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을 시작하게 한 사진들은 여전히 힘을 지닌다. 그 본래의 주장도 여전히 유효하다. 파킨슨 환자들은 그 병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가 아니라는 것. 그러나 10년이 지난 후, 같은 얼굴들을 다시 찾아간 후, 어떤 삶은 이어지고 어떤 삶은 좁아지거나 끝나는 모습을 지켜본 후, 그 의미는 달라졌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가시성을 주장했다.

두 번째는 지속을 주장한다.

이 둘은 함께, 파킨슨에 대한 기록일 뿐 아니라, 병을 앓는 사람이 동시에 그 병의 증인이 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기록을 이룬다.

라이네스는 이야기를 해결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너무 많은 것을 해결해버리는 이야기들을 더 의심하게 되었다.

"병 자체도 흥미롭습니다." 그가 말한다. "하지만 정말로 매혹적인 건 사람들이죠."

다시 보라.

그리고 10년 뒤에 다시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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